탄소배출 산출조차 못해…기업 '기후대응' 열악
탄소배출 산출조차 못해…기업 '기후대응' 열악
  • 메디테크뉴스
  • 승인 2023.11.07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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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가스 감축수치화 경쟁력 좌우

수출기업 408곳중 10%만 기후대응

"계획조차 없다" 응답, 40%나 달해

국내 기업들이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는 문제의식은 있으나 관련 활동을 적극적으로 펴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친환경 경영에 필요한 비용 등이 부담스러운 까닭으로 풀이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금융 지원을 늘리고 컨설팅 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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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기업들이 기후변화 대응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관련 조치를 시행하는 비율은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규모가 작거나 관련 경험이 적은 기업에게 정부의 맞춤형 컨설팅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소재 수출기업 A사는 BMW 등 해외 자동차 메이커에 부품을 납품한다. 최근 원청업체가 재생에너지 사용 계획을 포함한 탄소 감축 계획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현재 국내 재생에너지원 비중이 선진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아서 A사 입장에서는 재생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어렵다. 

 

경기도 소재 플라스틱 제조·수출업체 B사는 다회용 플라스틱 포장 용기를 물류센터나 부품공장 등에 판매·렌탈한다. 이들이 고객사에 제공하는 제품은 다회용이어서 탄소 감축 효과가 있다. 하지만 배출량을 얼마나 줄였는지 정량적으로 산출하기는 어렵다. 반면 해외 경쟁사는 온실가스 감축 수치를 구체적으로 제공하고 있어서 B사의 수출경쟁력이 상대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위와 같은 사례는 국내 산업계에 실제로 닥친 문제들이다. 최근 한국무역협회가 수출기업 408곳을 대상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과 대응 현황을 조사했다. 그 결과 약 85% 기업이 ‘기후위기가 경영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다. 95.6%가 기후위기 대응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관련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기업은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 기업 중 기후변화 대응을 하고 있다고 응답한 곳은 10%에 불과했다. 대응계획조차 없다고 응답한 기업도 약 40%에 달했다. 현재 기업들의 기후위기 대응조치도 에너지효율 개선 등 단기적 비용절감 조치에 치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무역협회 "기술개발 지원 등 중장기 제도 추진해야"

 

주요 대기업 등이 관련 활동을 비교적 활발하게 펼치고 ESG 경영에 대한 관심도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소규모 기업의 상당수가 기후변화 대응 활동이 미흡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기업 규모 등을 고려해 맞춤형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역협회는 “기업 규모와 수출 경력을 고려한 맞춤형 컨설팅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협회는 “단기적 비용 절감 조치를 넘어 기업들이 기후친화적 제품 및 서비스 개발을 통해 신시장 선점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관련 기술개발을 지원하는 중장기적 차원의 제도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응답 기업 중 95.6%가 기업활동에서 기후위기 대응이 보통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답했다. 반대로 경영활동이나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답한 곳은 15.0%에 그쳤다. 이는 지난 2022년 7월 진행한 다른 조사에서 탄소중립 추진과 관련해 별다른 압박이 없거나 체감하지 못한다고 답한 중견·중소기업 비율이 각각 71.2%, 87.8%였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달라진 분위기다.

 

조사에 응한 기업 대부분이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 주요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압력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규제기관이나 정부(41.9%)로부터 압박을 받는다는 기업이 가장 많았고 이어 시민사회(41.7%), 고객사·소비자(39.2%)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주주·투자자나 은행·채권자 등 금융부문 이해관계자로부터 받는 압박을 언급한 곳도 있었다. 

 

기후변화 대응은 사회공헌 측면이 아니라 기업의 재무구조와 경영활동에도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각국 정부 등에서 관련 규제 등을 도입하고 있어서다. 실제로 응답 기업 66.2%가 ‘탄소배출 규제(배출권 거래제도 등)’를 언급했고 ‘(RE100 등) 재생에너지 의무사용’(52.5%), ‘ESG 공시 의무’(24.3%) 등이 수출기업에 영향을 준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기업들이 기후변화 대응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이지는 못하고 있다. 조사 결과 현재 대응 활동을 하는 기업은 10% 수준이고 절반 정도(49.5%)가 앞으로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업 규모가 크고 수출 경력이 길수록 상대적으로 적극적이었지만 계획이 없는 기업도 전체 응답자 중 40.4%에 달해 전체적으로는 대응이 미흡한 것으로 분석됐다.

 

대응계획을 수립하지 않는 이유는 ‘새로운 환경변화에 대응할 자금 부족’을 꼽은 기업이 46.1%로 가장 많았다. ‘감축 방법을 몰라서’(42.4%)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기업 비율도 높았다. 무역협회는 이와 관련, “이들 기업을 대상으로 지금보다 적극적인 맞춤형 컨설팅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기업의 활동이 주로 단기적인 비용 절감 조치여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61.0%의 기업이 기후변화 대응 조치로 에너지효율을 높인다고 답했고 친환경 장비를 사용한다는 기업도 48.0%였다. 이를 두고 협회는 ‘에너지효율 개선과 같은 단기적 효과가 큰 조치가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해석했다. 이런 조치는 대부분 정부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고 비용 절감 효과도 높아서 기업들이 비용 효과를 위해 관련 조치를 취했다는 시선이다. 

 

실제로 응답 기업의 36.3%는 탄소배출 감축을 위해 대체 공급망 발굴 조치를 검토하고 있지만 실제로 보험가입이나 공장 이전 조치 등을 취하는 비율은 15% 내외에 불과했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이 존재하는 셈이다. 

 

◇중소 제조업계 "관련 인력·시스템 구축, 결국 예산 문제"

 

기업이 환경 이슈에 대응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있지만 대응 활동이 일부 미미한 배경에는 비용부담 등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업계에서는 이에 대한 지원정책 강화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선 기업들도 비용지원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조사 대상 기업들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가장 필요한 지원정책이 ‘설비교체 등 비용지원(63.2% 1+2순위 합산)이라고 답했다. 특히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비용 지원에 대한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중소규모 제조업체 한 관계자는 “인력과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결국 예산이 필요하고 탄소배출을 줄이거나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건 모두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어려운 문제이기도 해서 관련 지원이 더 늘어나면 좋겠다”고 말했다. 

 

무역협회는 이와 관련, “기업들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금융지원이나 기술개발 지원을 확대하고, 기업 규모와 수출 경력 등을 고려한 맞춤형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필요한 자금에 대해서는 금리 부담을 줄여주거나 대출·보증 한도 확대, 대출 상환 및 이자 납부 유예 등의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기업 규모가 작고 수출 경력이 짧은 기업을 대상으로 맞춤형 컨설팅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앞으로는 친환경 키워드로 시장이 재편될테니 기후친화적 제품과 서비스 개발이 가능하도록 중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협회는 “탄소중립 목표 설정을 넘어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 기업 차원에서 이를 이행할 수 있도록 산업별 맞춤형 배출량 산정법 및 저감방안을 제공하고 관련 기술개발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일선 기업에서도 단기적 비용 절감에만 주력하지 말고 다양한 관점에서 기후위기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기업이 지속가능경영과 환경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는 건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여서다. 김정훈 UN SDGs협회 대표는 “최근 외국 기업 C레벨 임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해당 기업들이 환경 및 지속가능경영 활동에 매우 적극적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김정훈 대표는 “세계 여러 국가에 법인을 두는 기업들은 ‘국제 사회 공동 이슈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이에 따라 UN주도로 193개국이 결의한 SDGs(지속가능발전목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산업계 ESG 관계자도 “공급망 내 탄소배출량을 측정하는 등 효율적인 감축방안을 찾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꼼꼼한 대응전략을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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