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하늘 날던 새들 애월항서 '픽픽'…죽음의 벽 사라진다
제주하늘 날던 새들 애월항서 '픽픽'…죽음의 벽 사라진다
  • 메디테크뉴스
  • 승인 2021.10.16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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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애월항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기록. 각 점이 모두 벽과 충돌해 죽은 새가 발견된 지점이다.(네이처링 갈무리) 2021.10.16


<디지털뉴스팀> 자연활동 공유 플랫폼 '네이처링'에서는 2018년부터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조사' 미션이 진행되고 있다.

전국에 있는 시민들이 유리창, 방음벽 등에 부딪쳐 죽는 새들의 사진을 찍어 올려 조류 충돌과 관련한 공공데이터를 쌓아가는 곳이다.

전국 지도를 제주로 좁히면 수많은 점이 겹쳐 있는 장소 하나가 눈에 띈다. 제주 옥빛 바다를 끼고 있는 애월항이다.

애월항을 말발굽 모양으로 둘러싼 127개의 점, 모두 새가 죽었던 자리다. 제주도 전역에 기록된 충돌 사례는 총 232건으로, 이 중 절반 이상이 애월항에서 발생했다.

제주 하늘을 자유롭게 날던 새들이 속수무책으로 추락한 건 모두 투명한 방진벽 때문이었다.

 

 

 

 

 

제주 애월항에 설치된 투명 방진벽. 2021.10.16

 

 


새들은 시각적인 구조 탓에 투명한 벽을 장애물로 인식하지 못한다. 벽 너머로 보이는 하늘과 바다만 보고 돌진하다 머리가 깨지거나 부리를 잃고, 장기가 터져 죽는다.

애월항 전체를 거대하게 둘러싼 이 벽은 항구를 드나드는 차량 소음과 비산먼지를 막기 위해 설치됐다. 그 길이만 무려 628m, 한 눈에 담을 수 없을 정도다.

벽 길이가 워낙 긴 탓에 중간중간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문까지 설치돼 있었지만, 새들은 그 벽을 넘지 못하고 정면충돌해 생을 마감한다.

함승우씨(23)는 지난해 6월 처음 이 곳에서 조류 충돌 흔적을 발견하고 네이처링에 기록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가 발견한 사체만 80마리가 넘는다.

 

 

 

 

 

 

 

애월항 방진벽과 충돌해 죽은 물총새.(함승우씨 제공) 2021.10.16

 

 


사실 '사체'라고 부를 수 있을만큼 형체가 그대로 유지돼 있는 새들은 많지 않다. 다른 동물이 쪼아 먹었는지 머리가 없거나 몸통이 없는 새들, 썩어 뼈만 남은 새들도 있었다.

피에 젖어 땅바닥에 달라붙은 깃털만 남기고 사라진 새도 있다. 어느날 방진벽에서 발견한 혈흔 아래 풀밭에는 비둘기과로 추정되는 새의 깃털만 잔뜩 남아있기도 했다.

물총새, 방울새, 제비, 직박구리, 참새, 멧비둘기, 흰배지빠귀 등 죽은 채 발견된 새들의 종류만 무려 17가지다. 혈흔, 깃털만 남겨 종을 알 수 없는 새까지 포함하면 더 많다.

함씨는 "어디든 투명한 벽이 있는 곳이라면 새 사체를 발견하는 게 어렵지 않다"며 "여름에 제주로 번식하러 온 물총새는 어미부터 새끼까지 벽에 부딪쳐 죽는다"고 설명했다.

영문도 모르고 죽어가는 새들을 보다 못한 함씨는 제주도청에 정식 건의문을 제출하기도 했다.

 

 

 

 

 

 

 

애월항 방진벽에 새가 충돌하며 달라붙은 깃털.(함승우씨 제공) 2021.10.16

 

 


함씨의 건의문 등 여러 민원을 접수한 제주도 역시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본격적인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도는 올해 안으로 애월항 방진벽 전 구간에 예산 2억2000여 만원을 투입해 특수 필름을 부착할 방침이다.

이 필름에는 2019년 5월 환경부 지침에 제시된 5x10 규칙을 적용해 가로 5㎝·세로 10㎝ 간격의 무늬가 새겨져 있다. 새들은 이 무늬 사이 간격을 통과할 수 없는 구역으로 인식해 벽을 피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도 관계자는 "애월항 조류폐사와 관련한 민원을 검토하고 사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며 "앞으로도 항만 구조물로 인한 야생동물의 피해 최소화를 위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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